4.18 고려대 학생 시위 및 피습
1960년 4월18일 3천여명의 고려대 학생들은 "기성세대는 반성하라" "마산 사건의 책임자를 즉각 처단하라"는 선언문을 낭독한 후 "민주역적 몰아내자. 자유 정의 진리 드높이자"라는 현수막을 들고 국회앞에서 평화적인 시위를 하였다
시위 중 연행되었던 학생들이 풀려나서 고대생들이 학교로 돌아가는길에 수많은 시민과 고교생들이 뒤따랐다.
그러나 학교로 돌아가던 학생들은 정치깡패 [반공청년단]의습격을 받아서 2백여명이 다치고 정부는 시위를 더욱 강경하게 진압하기로 결정했다.
이 사건은 4.19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.
학생들의 피습사실이 다음날 신문에 보도되자 분노한 고교생들까지 전국적으로 시위에 가담하게 되었다.
고대학생들의 피습소식이 전해지자,4월19일 수많은 대학생과 고등학생,시민들이 "부정선거 다시 하라. 독재정권 물러가라" 고 외치며 서울시내 곳곳을 누볐다
시위대는 10만명을 넘었고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로 향하기 시작하였다.
시위대가 경무대앞에 이르자 경찰이 총을 쏘기 시작하여,21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.
정부의 강경대응에도 불구하고 시위가 인천,수원,부산,광주 등 전국으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이승만 정권은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.
이날 전국적으로 시위대와 경찰 등 115명이 사망하고 727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.
그 결과 국무위원과 부통령이 사표를 냈고 이기붕 부통령 당선자는 사퇴를 고려하겠다고 했다.
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총재직만을 사퇴하겠다고 하며 자유당 정권통제는 그대로 유지되는 듯 하였다.
이승만의 미온적 태도에 분노한 국민과 전국 27개대학 교수단 258명이 종로에서 시위를 하며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국선언문을 채택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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